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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성찰>

잡담+발광 1. 데카르트 성찰


잡담+발광, 제 1 주제 : 데카르트 성찰

의심을 통한 코기토 명제로 유명한 형식주의 철학의 대표 데카르트.
많은 이들과 이 글의 동반자 @HansHoon 의 입장이라면
멍때리고 살았던 나( @No_Goon )에게는 좌표의 창시자정도로 느껴졌었다.

이렇게 한가지 사물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있음을 느끼고 
서로의 생각을 더 발산시기고 혹은 수렴시키기 위해
이렇게 같은 주제를 선정 각자의 글을 쓰기로 제안하였고,
그 1주제로 철학자이고 수학자 이면서 어쩜 종교학자일지도 모를 데카르트의 성찰
@HansHoon 가 발제하였다.


성찰
카테고리 미분류
지은이 데카르트 (문예출판사,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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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제 시작이므로 각자의 블로그의 글의 요약을 담고 그 링크를 두는 방식과
질문이나 의논점에 대한 것을 이 글에 담기로 하겠다.





< by @HansHoon : 1. 데카르트적 명상>

1. 생각의 역사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하나는 생각하는 사람들의 결론들을 모아 놓은 역사말하자면 철학사나 윤리교과서 따위에 있는 역사입니다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방법의 역사나와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 처해 있었던 사람들이 경험한 생각의 모험을 다시 경험하려는 관점입니다.

 2. 서로 다른 전공을 한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 보자는 이 잡담” 기획에서우리는 맨 처음으로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기로 하였습니다근대 철학의 원점에 있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 증명됨(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in qua Dei existentia et animae immortalitas demonstrantur)>입니다보통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 혹은 성찰” 까지만 불러 주니 서구에서는 보통 <Meditation>이라고 불렀고일본 학자들에 의한 번역 제목이 <성찰록省察錄>, 한국에서는 이걸 따라 <성찰>이라고 불르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해서 흐느적흐느적 주절주절 잡담을 하는 것이 목적인 이 글의 제목은 데카르트적 명상입니다사실 이것은 에드문트 후썰Edmund Husserl의 글인 “Méditations cartésiennes (Cartesian Meditations)”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보통 이 제목은 데카르트적 성찰’”로 옮깁니다하지만 나는 성찰이라는 번역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자신의 내면을 반성하고 살핀다는 의미에서 성찰은 충분히 좋은 번역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현대 한국어 속에서 명상이 가지는 의미즉 내면의 의식과 경험적 세계그리고 그 너머의 초월에 모두 관여하는 뉘앙스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한승훈의 종교학 잡담
http://hanshoon.tistory.com/29





< by @No_Goon : 1. 성찰 속 수학을 꿈꾸다.>

개인적으로 "이과"적 관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철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지난 여러 사람들의 말들을 열거하면서 논평하는 일에 그다지 익숙지 않고, 익숙해지려 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똑똑한 말싸움'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수학을 오래 해오거나 혹은 오랫동안 흠모하면서 그 자체의 논리성에 대한 아름다움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고 점점 삶에 대한 수학적 적용 혹은 수학적 사고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는 '좌표의 창시자'로 더 익숙한 그 사람, 데카르트.

 하지만 모두에게는 코기토 명제로 익숙한 '데카르트'에 대한 글을 제의(@HansHoon에게) 받고,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말들 앞에 서고 나니 철학 혹은 말싸움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특히 수학을 하는 자로써 그가 가지는 사고의 흐름은 눈을 뗄 수 없는 멋진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그 구경거리에서 나의 느낌(수학)을 몇 자 적어보려......

1. 악마의 가설과 꿈의 가설, 그리고 변증

2. 모든 것이 이전의 관념, 공리

3. 코기토 - 존재와 사유 사이의 함수를 공리로 세우다.
    (3성찰 신 존재 증명, 함수적 표현)

4. 사유를 기저로 [데카르트 공간을 만들다]

5. 나의 한계? 그리고 데카르트의 한계?


더보기 - 노군의 수학 중독기 블로그
http://holicmath.tistory.com/69




< by @No_Goon : 2. 신을 법정 앞에 세우다.>

한권의 책에 함축된 내용이 많았던 건지, 아니면 내가 아직 수다를 더 떨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번 글로는 왠지 할 말을 다 못한 수업 같이 찜찜하다. 이제 한번 더 성찰이란 책 앞에 노트북을 펴본다.

6. 신보다 앞선 개인 - 신을 법정 앞에 세우다.

7. 대수적 구조, 정신과 물체(신체)를 가르는 칼이 되다.

8. 네가 그리 말하니까 왠지, 반박하고 싶어!(공리를 부정한다면)

9. 모든 것을 마무리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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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olicmath.tistory.com/70




Q1(한) : 집합론을 발전시킨 칸토어도 후기 저작에서 데카르트처럼 신을 끌어들인단 말야. 신의 마음속에만 존재하고 창조되지 않은 "절대무한"이랑 창조된 것으로서의 "초한수"를 구분한다거나. 그런가 하면 지금 수리철학자들은 똑같이 수학적 방법으로 사유를 하는데, 신 그런 거 굳이 증명(확인) 안 하거든.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악령의 가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과정이 필요했던 거고. "신"이나 그 비슷한 뭔가를 전제하고 안 하고에 따라서 수학은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A1(노) : 기본적으로 무한이라는 것은 오래전 부터 신의 영역으로 보았거든. 사실 칸토어도 나중에 많은 논란거리가 되었던 부분도 그 무한을 다룬거였어. 즉, 신의 영역을 침범한거야. 독실했던 대다수는 무한이라는 것은 우리가 경험 할 수 없다는 것을 들어서 비판하지.(결국에는 인정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형식적인 증명은 러셀의 역리로 마무리되었기에[각주:1] 굳이 이야기 할 필요는 없고, 경험주의적으로 보았을때는 이미 경험 불가능한 것이기에 다룰수 없다고 말하겠지.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이 의미없어진 것은 아니야.
 반대로 이야기 하면 '4색 문제의 컴퓨터를 이용한 해결'을 두고 많은 수학자들이 수학으로 인정하는가 마는 가의 문제를 갖고 있어. 과연 인간의 갖는 사유의 결과가 아닌 컴퓨터가 뽑아준 수치의 결과가 수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냐는. 수학의 정의까지 모조리 달라지기에 아직도 의견들은 팽팽하지.
 인간의 수준을 신으로, 컴퓨터의 수준을 인간으로 한단계 격상[각주:2]한다면, 질문에 대한 어렵풋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Q2(노) :  <원인-결과 모델, 기만하지않는 신> 이 둘은 공리성이 깨진다면 어떤 다른 결과를 내세우게 될까?
유무에 대한 공리나 신의 관념 탑재가 깨질때 같은 너의 글과 같이 말이야. 마지막 부분 공리깨기를 끄기에 앞서! 당신의 좋은 의견을 듣고 싶네.
  1. 절대자는 집합적으로 모순 [본문으로]
  2. 이 말 참 오랫만일쎄.. [본문으로]